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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인생론

by 휘핏 2021. 10. 17.

그는 자신이 칸트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칸트의 사상을 올바르게 이어받았다고 확신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독일어: Arthur Schopenhauer, 독일어 발음: [ˈaɐ̯tʊɐ̯ ˈʃoːpənˌhaʊ̯ɐ]) 1788년 2월 22일 ~ 1860년 9월 21일)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하고,
견뎌야 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견뎌내라.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는 -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조차 갖지 말라.

 

 우리는 우리가 살고자 하는 삶이 아니라 -
살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

그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사람들이 질투의 감정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자신보다 나은 처지의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자신보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비참함을 돌아보게  된다. 
  

 모든 불행의 시작은 -

비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 지구상에 나보다 불행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거나, 듣지 못하는 사람들,
한 끼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 그들도 역시

그대의 주변에서 그대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학강의에서 헤겔과 충돌한 후 대학교수들의 파벌을 경멸하여 아무런 단체에도 얽매이지 않고 대학교 밖에서 줄곧 독자적인 연구활동을 지속하였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보다 앞서 있는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뒤를 따르고 있는가를 생각하라.


 고통이란 삶의 본질적 요소이다.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부러워할는지는 모르지만 - 
사실, 그러한 상황은 그 사람들의 성격에 맞을 뿐이고,
당신의 성격에 맞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만일 당신이 그 상황에 놓인다면 자기를 불행하게 느낄 것이고,

참는 것 조차 거의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물고기에게는 물 속이, 새에게는 공중이,

두더지에게는 땅 속이 행복한 것처럼 -
자기에게 적합한 분위기만이 행복을 주는 것이다. 
가령, '누구나 궁정의 공기에서 숨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 -
자기가 가진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부조한 것만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불행의 길을 걷는다.

 

 절제가 기쁨을 낳는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사건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
불행한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거나
적어도 지금 당장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 인생은 마치 커다란 모자이크와 같아서 -
가까이에 있으면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려면 멀리 떨어져서 봐야 한다.

 

 활동한다는 것, 즉 무엇인가를 추진하거나
적어도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행복의 필수요건이다.

 

 이미 바꿀 수 없는 불행한 과거는 되도록 빨리 잊자.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디딤돌로 삼아 더 멀리 뛰자.

 

 객관적인 환경이 아니라 -

자기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행복과 불행은 서로 위치를 바꾼다.

 

자신의 철학이 자연과학의 증명과도 맞닿아 있음을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주장했다. 그 뒤에 윤리학에 대한 두 논문을 묶어 출판하였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출판된 지 26년이 지난 1844년에 개정판을 출간하였다.

 

 고통이 없고 동시에 권태가 없는 삶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이다. 그것이 바로 행복의 절정이다.

 

 인간을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것은 객관적인 그 무엇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과 인식은 훌륭한 건강을 전제로 할 때만 올바를 수 있다.

 

 건강하면 - 모든 것이 기쁨의 원천이 된다.

 

 행복은 - 건강이라는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한다.

 

 인간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이 말은 곧, 내일부터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
지금 이 순간부터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이다.

 

 많이 웃는 사람은 행복하고,
많이 우는 사람은 불행하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명랑한 마음은 - 건강의 가장 확실한 소득이다.

 

 행복을 형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쾌활한 성격이다.

쾌활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삶을 즐겁게 받아들이며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낀다.

 

 행복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진정한 희망이란 -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다.

 

 선량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
불행한 상황에서도 만족을 느끼지만,
욕심이 많고 어리석은 사람은 -
수많은 재물을 소유하더라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우리들의 불행은 대부분 -
남을 의식하는 데서 온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건강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와 정신의 안정이다.

 

 우리들의 행복은 -

건강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필연이다.
실질적으로 건강은 모든 즐거움과 기쁨의 원천이다.

 

 고독은 - 뛰어난 정신을 지닌 자의 운명이다.

 

 사교가 뛰어난 사람들은 대체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평가해도 좋다.
그러나 비사교적인 사람들,
특히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외로운 영혼들은
어떤 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봐도 좋다.

 

 모든 불행은 -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시작된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순간 -
안정된 기분은 흐트러지고 불안이 나타난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는 -
타인 본위의 허영심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나 자신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핵심이다.

 

 허영심을 없애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 
그것에 뒤따르는 행복이라는 대가는 매우 크다.

 

 수도자들이 은둔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본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인  남의 눈을 의식하는

태생적인 결함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마음의 평화와 힘은 매우 커진다.

 

 타인에게서 혹은 외부로부터는

어떤 점에 있어서도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쇼펜하우어는 1820년 대에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마이어를 통해 힌두교와 불교에 관해 알게 되었다. 이 종교들의 핵심교리 속에 자신과 칸트가 도달한 결론과 같은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 있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인간의 행복은 -

얼마나 홀로 잘 견딜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늘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노예일 뿐이다.
노예는 늘 주인의 눈치를 살피고, 주인의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
하기 싫은 일이 있을지라도...

 

 불행해지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
너무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가진 재믈이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보다는
자신의 인식(태도)에 달렸다.

 

 지혜 다음으로는 - 용기가

행복을 위해 비상하게 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날개가 되어준다.


 행복의 90%는 건강에서 온다.
병든 황제보다 건강한 거지가 훨씬 더 행복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
얼마만큼 행복을 누리는가를 측정해보려면,
그가 누리는 기쁨의 양보다 괴로움의 양이 얼마나 되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괴로움이 작을수록 그가 누리는 행복의 크기는 증가하기 때문이다.

 

 말이나 표정으로 분노와 격정을 드러내는 것은 -
무익하고 위험하며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일이다.

 

 현명한 사람은 -

고통이 없기를 바랄 뿐..

쾌락을 원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쾌락 대신 [지혜]를 -
행복 대신 [깨달음]을 추구해야 한다.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라는
나약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라.

 모든 사건은 필연이거나 우연이다.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단지 우연인 것이다.

 

 행복론의 변함없는 진리는 -
사람의 소유나 명성보다
존재 자체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주관은 객관보다 훨씬 본질적이며 -
즐거움의 9할은 주관적인 인식에서 나온다.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은
완전한 고독 속에서도 -
자기 자신의 사유와 상상을 통해
탁월한 즐거움을 누린다.

 

 이성은 대체로 엄격한 후원자 역할을 하며,
삶에서 끊임없이 체념을 제의 한다.

 일의 내용이나 결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
그 사람이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후회란 자신을 고문하는 짓이다.

 

 질투는 부도덕과 불행의 가시를 품고 있다.

 

 인간의 모든 고뇌와 고통, 불안과 의기소침의 대부분은 -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걱정에서 나온다.
우리들의 질투나 증오심도 대체로 같은 뿌리에서 자란 가지들이다.

 

 우리는 흔리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바라볼 때마다
'만일 저것이 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결핍을 인식하며 불행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대신, 자신이 소유한 것을 바라보면서 -
'만일 이것을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를 생각해봐야 한다.

 

 타인의 잘못을 고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비록 천하고 가련하며 비웃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
그의 인격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의 인격 속에 존재하는

영원성이나 불멸성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나쁜 인격자를 만난다 하더라도 -
'그래 세상에는 저런 존재도 필요하지' 라고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기쁨과 고통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 성공했다고 해서 자만할 필요가 없고 -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지혜롭게 활용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여 자신에게 알맞은 일을 찾는다면
행복을 느끼기는 쉬울 것이다.

 

 헤라클레스처럼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사람이 -
보석 세공을 하거나, 학문 연구를 한다면,
그는 타고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은 불행을 면하기 어렵다. 

 

 타인들의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은

결국 - 그들의 노예일 뿐이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남들이 알아주는 것을 초월해서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인간은 행복할 때 행복한 줄 모르다가 -
불행이 닥쳐야 비로소, 그 때 자신이 행복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불행과 괴로움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
자신보다 더욱 비참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이다.
이것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비법이다.

가령, '내가 지금 아파서 병실에 누워 있다면?'
'나의 연인, 나의 친구가 없다면? 나의 가족이 없다면..?'

 

먼 과거의 동양 사상가들이 서양과는 전혀 다른 환경, 언어, 문화 속에서 근대적인 서양철학의 과제에 대해서 같은 결론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발견을 쇼펜하우어는 글로 써서 남겼고 서양에서 최초로 동양철학의 세련된 점을 독자들에게 알려주었다.

 

 세상은 시도 때도 없이 변하기 때문에
기쁨이 슬픔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슬픔이 뜻밖의 기쁨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머리로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미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슬픔의 눈물을 흘려본 사람만이 -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

 

 미래를 향한 근심은 자주 무익하지만 -
과거를 향한 그리움은 항상 무익하다.

 

 인간은 웃음과 울음을 통해 자신이 가진 감정을 드러낸다. 
웃음은 - 기쁨과 행복을..

울음은 - 슬픔과 증오를..
기쁨이 충만한 삶, 그곳에는 행복이 미소 짓는다.

 

 쾌활한 성격은 -

행복을  배달하는 집배원이다.

쾌활함이라는 보물을 얻기 위해 노력하라.

 

 결코 미리 불행을 상상하며 걱정하지 말라.
눈앞에 불행이 선명하게 나타나기 전에는 결코 걱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자의 생활이다.

 

 성공과 실패가 서로 교차하는 것 -

그것이 바로 우리네 삶의 본질이다.

 

 자신의 외부에서 행복을 발견하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밖에서 행복을 얻으려고 하면 불행을 초래할 뿐이다.

 

 시야가 좁을수록 행동의 범위가 작을수록
우리는 더욱 편안하게 행복을 느낀다.
시야와 행동의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걱정과 욕망이 증가하기 때문에 만족을 쉽게 얻지 못한다.

 

 지적인 생활은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한다.
그러나 지나친 지적활동은 도리어 불행을 초래한다. 
지적활동에 익숙해지면 일상의 역경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적인 풍요로움과 현실적인 활동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마음의 동요가 적을수록 고통도 줄어든다.
활동의 영역을 좁히면 마음의 동요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활동을 제한한다면 우리를 권태에 빠지고 만다.

 

 이 세상에서 확신을 가지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다른 사람과의 교제는 혐오와 손실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만족하면서 확신을 가지는 자는 이미 행복하다.

 

 고귀한 성품이나, 뛰어난 두뇌,

쾌활한 성격, 예민한 판단, 건강한 육체 등은
행복해지기 위한 필수 요건들이다.

 

 삶이 어떤 것으로 다가오는가 하는 문제는 -
전적으로, 그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행복을 측정하는 유일한 척도는 -

평온한 마음이다.

 

 젊고 아름답고 부유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다.
행복은 결코 객관적인 사실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러므로 불행이 다가오기도 전에
걱정부터 하는 것은 어리석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에
현재의 일을 주저하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
미래의 불행은 불확실한 것이지만
현재의 행복은 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 중에 -
언제나 즐겁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 중에는 -
언제나 우울하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재물이 결코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지나친 방탕과 쾌락의 늪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라.
분노나 격정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혼란을 피하고,
정신적인 긴장이 계속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날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음식에 절제를 두어라.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 것은 -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

 

 나보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 스스로 자신을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을까? 
사실 그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고통으로 인해 더욱 불행할지도 모른다.

 

 재난을 당했을 때, 가장 좋은 위로는 -
나보다 더한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을 돌아보는 일이다.

 

 똑같은 태양도 -

추울 때에는 온몸을 따스하게 녹여주는 고마운 존재지만
더운 여름에는 귀찮고 성가신 존재로 바뀌어 버린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과 사건도 -
그것을 바라볼 때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는 것이다.

 

 행복은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친절을 베풀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찾아온다.

 

 쾌락과 욕망의 충족을 위해 살며 
항상 행복을 누릴수는 없는 법.

 

 고통이 없는 상태를 위해 노력하라.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이 없는 상태보다 쾌락의 삶을 선택한다.

그럼으로써, 불행을 피하지 못한다.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은 -

산을 오르는 고통을 참고 견뎌내다가 결국

산정상에 올라 자연의 위대함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의지의 작용만이 -
인생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라.

 

 세르반테스는 현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
참혹한 감옥에서도 불후의 명작 [돈키호테]를 쓸 수 있었다.
그는 갇히고  폐쇄되었다는 외적 환경보다는
의식을 자유롭게 풀어 상상의 나래를 펼쳤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다.

 

 후회를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
불행을 완화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쇼펜하우어는 반 년도 안 돼 두 언어를 대충은 하게 되는 경지에 올랐다. 이 속도는 고타 김나지움의 교사들을 충격에 빠트릴 정도였다.

 

 많은 재물을 소유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정신적인 풍요와 깊이보다는
쾌락을 주는 외부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불행하다.

 

 행복에 대한 느낌은 욕심을 버릴 때 -
더욱 가까이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 마라.

 

 수많은 재물을 소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그 영혼은 공허한 경우가 많다.
쾌락과 방탕은 정신의 궁핍에서 비롯되는 권태의 일종이다.
이런 사람들이 외관상으로는 부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몹시 가난한 부류에 속한다.

 

 집착만큼 우리의 삶을

오랫동안 병들게 하는 것은 없다.
집착은 우리의 인생을 황폐하게 만든다.

 

 욕망에 대한 절제를 -
황금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가난이나 빈곤 때문에 추한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다.

 

 물욕의 만족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는 시도는 삼가라.
자신의 능력과 지혜에  따라 -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불행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나는 결코 다른 어떤 사람이 될 수 없다.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내부를 잘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행복의 땅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행복]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

내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은 틀릴 수 있다.
이러한 불균형 때문에 우리는 자주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가 생길 때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거나 증오하면서 정신적인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우울한 사람은 -

현실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므로
늘 삶에 지쳐 있다.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여 -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은 피하고,
자신에게 알맞은 일을 찾아서 한다면

누구나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쾌락은 환상의 산물에 불과하다. 
환상의 산물은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다.
환상은 사람들에게는 일시적인 위안을 줄 수 있지만,
환상이 깨어진 후에는 고통보다 더 큰 공허가 찾아온다.

 

 질투와 욕심은 -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눈을 방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능력을 확대 해석하거나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욕망을 조장한다.

 

 실패로 결말이 날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
한 가닥의 희망의 빛이 보인다면 결코 절망하지 마라.
시커먼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더라도 - 
한쪽 구석에 작지만 밝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다면,
그대여,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마라.
아무리 작은 빛이라 하더라도,
그 빛은 세상을 환하게 비춰줄 수 있으며
우리의 앞길을 열어 줄 수 있다.
'저기에 자그마한 빛이 보이지 않는가'

 

 천지가 뒤집히기 전에는 -

용감한 사람은 결코 쓰러지는 일이 없다.

용감한 사람은 어떤 일에서든지 
한 가닥의 희망의 끈을 잡고서 험난한 파도를 향해 뛰어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은 빛보다는 -
무거운 먹구름만을 의식하며 두려움에 떤다.

그러나 먹구름은 반드시 걷히기 마련이다.
진정한 용기를 가진 자라면 -

그대여, 그 작은 빛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최선을 다할 지어다.


 현명한 사람은 -
쾌락을 구하는 대신에 

재앙을 피하는 길을 모색한다.
그렇기 때문에 좀처럼 절망에 빠지는 일이 없다.

 

 쾌락은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육체적 욕망의 만족,
금전의 소비로 인한 만족,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얻는 자유는
곧 사라지고 마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어떤 사건에 대한 판단은 -
개인적인 주관(감정)에 의해 결정된다.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모든 책임이 나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얼마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운가!

 

 이 세상 그 누구도 나의 인생을 바꿀 수는 없다.
내 운명의 주인은 오직 나뿐이다.

 

 차원 높은 숭고함은 시련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
자연은 때때로 사나운 회오리바람을 내보낸다.
주위는 짙은 어둠에 뒤덮이고,
하늘에는 거친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우리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는 바위는 거대하며
대지에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는다.

강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거품을 일으키며 흐른다.
골짜기를 스며드는 바람은 귀신의 비명소리를 방불케 한다.
 
그렇게 우리는

손과 발이 묶인 채

자연과 싸워야만 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
고통이나 고뇌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인식의 순수한 주체인 나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통찰할 수 있다.

 

객관적인 인식과 냉정한 통찰은 -
우리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이러한 인식과 냉철한 사고가 없다면

우리는 수많은 세파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무모함과 거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사고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기 생각보다 남의 생각에 의존하여 살았으며,
나의 참된 자아보다 상대방 속에 깃들어 있는 자신의 모습에 집착했다.
그래서 올바른 이치를 쫓기보다는
그러나 이것은 다름아닌 허영이 저지르는 실수다.

만일 우리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면 -
불필요한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나
현재 누리고 있는 물질적`정신적 가치의

1/10만으로도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집 열채를 갖고 싶은 욕구를 가진 사람은 -
아홉채를 가져도 여전히 욕구불만으로 남는다.
또한 집을 한 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집의 일부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면 불만을 느낀다.
이처럼 불만은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상대적 인식의 문제이다.

 

 지금의 기분이나 상태가 좀 더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상태가 곧 행복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두뇌나 내면을 키우기 위한 노력보다

몇 천배나 더 많이, 부를 축적하기 위해 정신을 쏟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행복은 외적인 것이 아닌 자신의 내부에 달려있다.

 

 

쇼펜하우어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간의 유사성을 말한 철학자이자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노골적으로 표명한 독창적인 철학자로 손꼽힌다. 19세기 말에 유행하여 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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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김춘근 2021.11.08 17:57

    마치 쇼펜하우어를 섭렵한 착각을 일으키도록 요약해 두었네요
    공부 잘 하고 갑니다.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시계추와 같은 거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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